✦사랑의 정의(定義)를 담아, 그대에게
작업노트
2024년부터 진행한 <사랑의 정의(定義)를 담아, 그대에게> 시리즈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언어로 정의한다면 이를 통해 그 가치를 배울 수 있는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질문은 영화 <매트릭스>를 보다가 주인공 네오와 컴퓨터 프로그램과의 대화 장면을 보며 떠올랐다. 네오는 의문이 생겨 묻는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어떻게 사랑을 압니까?" 그에 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의 대답이 "사랑은 단어요(no, it is a word)"이다. '사랑'은 단어로 정의되어 있으니, 그 단어를 안다면 사랑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후에 본 영화 <그녀>에서는 AI인 사만가 "이젠 사랑을 알아(Now we know how.)"라는 말을 한다. 영화 속 AI들은 정보를 수집해서 사랑이라는 가치를 깨닫는다. 이와 같이 비가시적인 가치가 언어와 같은 어떠한 틀로 정리된다면 우린 이 가치를 배워서 알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생각을 거듭하며 ‘언어로 정의되지 않은 다양한 관점들’로 관심이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을 통해 정의로 규정되는 가치의 범주가 가진 한계와 사각, 그리고 계속 변화하는 가치에 대한 생각으로 주제 탐구가 확장된다. 결론적으로 작업은 가치와 정의 내림의 한계, 그리고 존재의 다양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사랑이란 감정에 대하여
2022년에 첫 조카가 생겼다. 조카를 사랑하게 된 일은 내가 선택하지 않고 타인이 나에게 쥐여준 존재를 사랑하게 된 첫 경험이었다. 제로에 가까웠던 사랑이 마음 한 곳에 차곡히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아마 존재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서 알 수 있다. ‘느낌’이라는 것은 몸의 감각이나 마음으로 깨달아서 아는 기운이나 감정이다. 비가시적 가치인 사랑을 깨닫고 이해하고 행하는 것이 ‘느끼지 않아도’, 그 단어의 정의를 앎으로서 가능할까? 또한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랑의 정의를, 이미 규정된, 한정되어진 정의를 가지고 제대로 배우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해졌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보편적인 성애적 사랑을 넘어 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혼재한다. 가족, 연인, 친구, 반려동물과 같이 함께 살아가는 무언가를 사랑하기도 하고, 연예인, 태양과 별, 신 등 함께 살아가지 않는 무언가를 사랑하기도 한다. 또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죽음과 같이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사랑도 존재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랑이 도처에 존재한다. 사랑에 빠진 조카와 나는 어떤 사랑의 정의에 속할 수 있을까? 세상에 사랑이란 이름 아래 행해지는 사랑스럽지 않은 행위들은 어떤 사랑의 정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정의할 때 기준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정의라면 스스로의 기준이 있겠지만, 모두가 알 수 있게 정의해야 한다면 어떤 기준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평균’, ‘보통’, ‘보편’. 아마 이런 것들이 기준이 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저 분류에 들어가지 못하면 정의에 관여할 수 없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믿는 현실에는 얼마나 많은 사각이 있을까? 현실이란 개인의 인식에 불과하다. 현실은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 하나의 사랑의 관계에서도, 그 관계 속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향이 똑같지 않기도 한다. 작업은 사랑의 정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다양한 사랑들을 바라보며 정의로 규정되는 가치의 범주의 한계와 사각,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랑의 ‘정의(定義)’를 담아서 보낸다,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