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실한 환상》
노한솔, 유재연 2인전
2024.12.3.-2024.12.28.
아트센터 자인, 서울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
사전이 가리키는 '환상'의 의미이다.
하지만 텍스트에 갇힌 사전이 아닌, 실제 삶에서 우리는 이 '환상'을 통해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무의식의 영역 속에 켜켜이 쌓인 '진실로, 거짓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은 환상이 갖는 무한한 자유로움 속에서 비로소 그 형상이 표출된다.
아트센터 자인은 이번 전시 <나의 진실한 환상 (When Fantasy Becomes Reality)>으로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진실함을 표현하는 유재연, 노한솔의 작품을 선보인다. 관람자는 자유롭게 전시실을 유영하며 현실과 닮은듯한 낯선 이미지들에서 자신만의 환상을 그려내며, 진실로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딥페이크'처럼 진짜와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기술의 발전 속에, 알고리즘에 의해 펼쳐지는 화면은 마치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지만, 실상은 외부요소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세계이다. 개인의 주체성은 약화되고 점차 수동적인 선택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진실성'에 대해 더욱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에 환상적인 화면 속에서 진실을 다루는 두 작가의 전시를 통해 우리가 진실로 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자 한다.
유재연은 꿈의 일부와 같은 몽환적인 빛의 색채 속에서 내적 위안을 주는 풍경을 그려낸다. 그의 작업은 다소 익숙하지 않은 색채를 띄고 있다. 이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넘어가는 통로로 기능하며, 눈앞에 주어진 이미지를 넘어 관람자로 하여금 마음 속에 담고 있는 풍경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의 조각들은 실존하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가 오랫동안 깊이 그려왔던 대상과 닮아있기도 하다. 따스히 안아주던 찰나의 평화, 숲속의 반딧불처럼 아스라히 빛나던 시간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바닷가 모래에 조심스레 써 내려간 이름.. 영원하지 않고 현존하지 않기에 더욱 애타게 그리워 해오던 것들이 '환상'이라는 스크린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작품 속 표정이 없는 인물들은 특정되지 않은 누군가로 치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결국 작가가 그려내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환상의 공간으로 이끌려진 관람자는 스스로의 진실을 마주하며, 자신이 바라던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의 작업은 정지된 꿈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여러 레이어로 켜켜이 쌓아 올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시간성을 나타내는 그의 작업방식은 일상 속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내면의 욕구가 오랫동안 축적되어 꿈으로 나타나는 현상과도 닮아있다.
노한솔의 장지와 먹을 활용한 작업들은 재료의 특성이 녹아들며 현실을 아련한 기억으로 만들었다가, 무의식 저편에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묻혀있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한다. 작가의 시각에서 포커스 된 장면들은 당연하게 여겨왔던,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미지와 병치된 텍스트는 작품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데, 가령 생일케이크의 연속된 이미지는 어떤 텍스트와 만나느냐에 따라 기억 너머의 환상 속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구복'의 장면들은 소원을 비는 각기 다른 형태들이 결국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카를 융이 주장했던 인류의 공통된 경험에서 비롯된,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무의식의 층위인 '집단 무의식'을 보여주며 개개인이 꿈꾸는 것들이 어떤 점에서는 꽤 비슷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또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다룬 작품을 선보이며, 형태가 달라져도 변질되지 않는 사랑의 의미에 주목한다. 관람자는 작품에 둘러쌓인 전시장 한가운데에 마련된 작가의 단편소설을 읽으며, 이미지와 텍스트가 혼합된 세계 속에서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나의 진실한 환상'이라는, '진실'과 '환상'이 결합된 다소 모순적인 전시명에 어찌 환상이 진실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를 융의 주장처럼 환상은 무의식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내면 세계를 이해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전시의 끝에 다다를 때 관람자는 '환상'을 통해 더욱 과감없이 드러난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