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 WHIPLASH》
김소정, 노한솔 2인전 2025.9.18.-2025.12.12. 한원미술관, 서울
제공: (재)한원미술관 (재)한원미술관의 대표 연례전인 《화가(畵歌): 그리기의 즐거움》은 올해 열여섯 번째를 맞이하여 작가 김소정·노한솔을 초청한다. (재)한원미술관은 2010년부터 한국화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갈 청년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지속적으로 조명하고 지원함으로써, 동시대 미술의 지형에서 한국화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공표하고 지속적인 담론의 장을 마련해왔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가속화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현실이 다층화되면서 한국화는 주제와 기법의 융합을 통해 참신한 표현 방식을 모색해야 할 중요한 전환점에 놓여있다. 이에 (재)한원미술관은 시대적 요구에 깊이 공감하며, 소재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상과 철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들을 주목함으로써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미술관의 실천적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2025)는 K-pop이라는 음악 장르와 무속 신앙, 민화 등 전통적 요소를 조화롭게 결합하여, 공감 가능한 서사 속에 한국 고유한 미학이 스며든 작품이다. 특히 등장인물인 호랑이 ‘더피(Derpy)’와 까치 ‘수씨(Sussie)’ 캐릭터는 조선시대 민화 ‘작호도(鵲虎圖)’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과거 두렵고 사나운 대상으로 그려지던 호랑이를 해학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표현했던 민화의 시각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 되었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와 액운을 막아주는 호랑이의 전통적 상징성 또한 대중문화 콘텐츠 안에서 새로운 매력으로 발현되었다. 이렇듯 동시대적 감성과 어우러진 고전적 요소들의 창의적 시도는 대중적 성공으로 이어졌고, 이는 한국화가 장르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당대의 정서를 품어내는 표현 매체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김소정·노한솔은 도시, 일상, 내면, 사회의 단면 등 폭넓은 주제를 전통의 근간 위에 현대적으로 변용한다. 이들은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시대의 흐름에 기민하게 조응하며 소재와 기법의 한계에 도전하는 과감한 실험 정신을 발휘한다. 작가들은 개인적 경험과 기억뿐만 아니라, 인터넷, SNS 등 수많은 이미지 아카이브에서 수집한 시각적 자료들을 작업의 원천으로 삼으며, 일상 속 낯설고 생경한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 안에서 발견한 감정들을 작품의 중요한 동력으로 활용한다. 이들의 날카로운 시선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거나 당연하게 여겼던 대상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하며, 기교를 배제한 담백하고 단단한 붓질을 통해 직접 경험한 풍경과 사물, 주변 인물들을 간결하면서도 재치 있는 구성과 유쾌한 분위기로 화면 가득 담아낸다. 최근 우리 사회는 예기치 못한 충격적 사건들을 연달아 경험했다. 정치적 혼란과 항공기 참사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사건들이 평온했던 일상을 순식간에 균열시켰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일상의 토대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그리고 우리가 예측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이 말한 "위험사회(원제, Risk Society)"의 현실을 몸소 체험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 위험은 개인의 의지와 불가피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개인과 사회에 급작스러운 변화와 충격을 안겨주는 시대의 면면은 이번 전시의 제목에 고스란히 집약되어 있다. 《위플래쉬 WHIPLASH》는 ‘채찍질’이라는 일차적 의미를 넘어, ‘갑작스러운 변화’ 또는 ‘갑작스러운 충격’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내포한다. ‘Whip(채찍)’과 ‘Lash(후려치기)’가 결합어인 ‘위플래쉬’는 단순한 물리적 충격이 아닌, 예상치 못한 사건이 개인과 사회에 초래하는 급작스러운 변화와 그로 인한 후유증을 은유한다. 의학적으로는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경부(頸部) 손상을 뜻하지만, 본 전시에서는 의미를 확장하여 우리 사회가 겪는 급격한 변화와 그에 따른 심리적, 사회적 파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요컨대, 급작스러운 충격으로 인해 야기되는 ‘위플래쉬’는 통념과 고정관념에 익숙해진 우리의 시선과 인식에 가해지는 강렬한 자극이자 비유로 해석된다. 이번 전시는 ‘기록하는 충격’과 ‘인지하는 충격’이라는 교차점을 전개한다. 충격을 ‘기록’하는 김소정은 사회적 사건이나 일상 속 어긋난 장면에서 오는 갑작스러운 충격을 전통 기록화 형식으로 담아냄으로써, 외면되거나 잊힐 수 있는 현실의 단면을 직시하게 한다. 사라져가는 순간들을 붙잡아 기록하는 행위는 우리에게 분명히 존재했으나 쉽게 잊히는 사건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며 깊은 사유를 촉구한다. 반면, 충격을 ‘인지’하는 노한솔은 인간의 시각적 관습이 개인의 경험에 의해 흔들리고 뒤틀리는 양상을 고찰한다. 작품 속 이미지와 텍스트의 병치는 익숙한 것들의 이면에 감춰진 낯선 면모를 드러내 관객의 고정된 인식을 교란시킨다. 이처럼 두 작가는 드로잉, 설치, 텍스트 등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전시공간과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일상과 맞닿은 세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제시한다. 이들의 작품은 삶의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변화’와 ‘충격’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입체적으로 재현하며, 관객이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 맥락에 비추어 깊이 공감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 #낯선 익숙함, 인지의 변곡점 익숙했던 세계가 생경한 빛깔로 물드는 경험은 작품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깊은 감흥 중 하나이다. 노한솔은 일상에서 접하는 고정된 의미와 상징, 그리고 미리 정해진 정보들을 어떻게 인지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형성하는지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그의 작품은 한국화의 전통 매체인 장지와 먹을 바탕으로 스프레이 라카와 글자 콜라주라는 기법을 더해 독특한 시‧지각적 감각을 창조한다. 이러한 재료의 이질적인 조합은 관객으로 하여금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새삼스럽고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반려견의 죽음은 작가에게 커다란 심리적 충격이자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느끼는 착각, 즉 ‘미시감(未視感)’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결코 객관적일 수 없음을 체감하게 한다. 행복의 표상인 토끼풀이 슬픔의 국화처럼 느껴지는 순간처럼,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물과 현상이 이미 고정관념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정보임을 작가는 일깨운다. 노한솔의 작업은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소중한 것의 상실이 가져다준 기존 의미와 상징의 뒤틀림, 즉 그 인지적 충격과 깨달음을 작품 안에서 끊임없이 체감하고 탐구하는 데 그 본질을 둔다. 또한, 노한솔은 회화가 품은 특유의 모호함과 다의적 표현 가능성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문자가 지닌 명징한 의미 전달력을 화면 위에 투영하여 이질적인 매체 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에 몰두한다. 작가는 포스터나 만화책 속에 쓰이는 표음어 글씨체에 주목한다. 이들 글씨체는 문자 이상의 역할을 하며, 텍스트이자 동시에 이미지로서 특정한 분위기와 감정을 즉각적으로 연상시킨다. 그는 이러한 글씨체가 ‘글씨 이미지’라는 고유한 시각적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교차하고 결합하는 지점에서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의 반응을 생성하며, 관객을 능동적인 해석의 자리로 안내한다. 이처럼 그는 익숙한 것들을 낯선 시선으로 전환시키며, 언어와 시각,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 있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2~1981)이 주장한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의 분리’는 언어와 대상 사이의 필연적 관계가 없으며, 기표(단어, 이미지)가 고정된 기의(의미)를 갖지 않고 유동적으로 의미를 형성함을 역설한다. 노한솔의 작업에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배치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뒤틀어, 관객이 고정된 의미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주관성과 유동성을 인지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익숙한 상징들이 개인의 경험과 조우할 때 예상치 못한 의미로 발현되는 현상을 파고들며, 의미 생성과 변화, 그리고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특히 작가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고정된 인식 체계라는 필터를 통해 이미 가공된 정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통과 현대의 조형 언어가 격렬하게 대비되는 시각적 충돌을 통해, 작가는 언어가 인지 체계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증명한다. 그의 작업은 ‘인지와 인식’이라는 주제 의식 아래, 익숙한 이미지와 낯선 언어의 이질적 결합으로 관객의 인식 체계에 직접적인 ‘위플래쉬’를 일으킨다. 이로써 관객은 자신이 당연시했던 인지적 편견을 허물고,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성 있는 사고를 갖게 된다. 글자 배열이 바뀌어도 단어 전체를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로 무리 없이 인지하는 현상, 즉 단어 우월 효과(Word Superiority Effect)를 활용하여, 작가는 〈자유의지, 자의유지〉(2025)를 통해 단어를 재배열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인지적 특성을 통해 글자가 단순히 의미 전달을 위한 기호적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온전한 형태를 지닌 회화적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익숙한 문자가 낯선 시각 자극으로 바뀌는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텍스트의 시각성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한편, 〈손에 손잡고〉(2022)와 〈그날의 진실은 아무도 모르겠지〉(2022)는 영화 자막을 연상시키는 텍스트 삽입 기법을 활용하여 이미지와 텍스트 간의 긴밀한 호흡을 형성한다. 각 작품은 독특한 연출 방식을 통해 상이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킨다. 〈손에 손잡고〉는 손의 이미지 위에 ‘손에 손잡고’라는 노랫말을 절묘하게 조응시킴으로써, 텍스트와 이미지가 하나로 결합하여 상호 의미를 증폭시키고 온기와 연대의 긍정적 메시지를 선명하게 직조해낸다. 〈그날의 진실은 아무도 모르겠지〉에서는 복잡하게 얽힌 손들의 모습에 의문형 문장을 작품에 서사적 미스터리와 불확실성을 더한다. 이러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조합은 모호함과 긴장감을 배가시켜 관객이 시각적 인지를 넘어, 작품에 숨겨진 서사와 심층적 의미를 능동적으로 추론하게 이끈다. 노한솔의 최근 작업은 상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이라는 주제를 심층적으로 확대해 나간다. 조카의 탄생을 통해 작가는 순수하고 무한한 사랑의 감정을 자각한다. 이전 반려견과의 이별에서 마주한 ‘사랑의 유한함’이 이제는 생명의 탄생이 지닌 ‘사랑의 무한함과 확장성’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2024년부터 〈사랑의 정의를 담아, 그대에게〉 시리즈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언어로 정의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사랑의 풍경은 실로 무한하다. 인간의 본능적인 끌림에서 시작해, 삶을 공유하는 가족, 벗, 반려 동물와의 따뜻한 유대를 지나, 나아가 우주적 존재를 향한 동경까지, 작가는 사랑의 모든 층위를 폭넓게 조망한다. 동시에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내재한 폭력, 고통, 죽음과 같은 어두운 이면까지도 예리하게 포착하며, 사랑이 지닌 본질적인 이중성을 오롯이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조카와의 교감 속에서 사랑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정의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탄생과 소멸,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삶의 극적인 풍경을 응시하며, 이별이 단순한 단절이 아닌 마음속에 영원히 이어지는 연결임을 통찰한다. 자신의 반려견과의 유대가 그랬듯 조카의 탄생 또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통해, 작가는 사랑의 '단위'와 '기준'을 끊임없이 재정의하고 그 어떤 틀로도 규정할 수 없는 사랑의 다채로운 면모와 그 모호한 경계들을 예민하게 감지함으로써, 정의로 규정되는 사랑의 한계와 그 너머의 사각지대까지 예술의 언어로 깊이 천착한다. 〈𝓛𝓸𝓿𝓮〉(2025)와 〈사랑이 자라나는 걸 봐봐〉(2025)는 손으로 만든 하트 모양과 텍스트를 통해 사랑의 형상과 그 의미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누구나 느끼고 그 본질을 다시금 일깨우는 따스한 울림을 선사한다. 이렇듯, 노한솔은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사랑’을 새롭게 바라보는 맑은 시선을 작품 속에 빚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사랑을 거대한 감정이 아닌 작고 소중한 일상의 언어로 번역해낸다. 이번 전시는 우리 주변의 ‘어긋남’과 ‘인식의 뒤틀림’에 예리하게 응시하며, 예술을 통해 현실의 이면과 인지적 균열을 심층적으로 탐색한다. 김소정은 사회 현상과 일상 속 ‘어긋남’을 기록함으로써 현실의 충격을 환기하고, 사라져가는 순간들을 붙잡아 망각에 저항하는 현실의 단면을 직시하게 한다. 반면, 노한솔은 개인의 인지 체계 속 ‘정의의 뒤틀림’을 탐구하며, 인지적 충격과 익숙함의 생경한 경험을 제공한다. 두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충격’을 기록하고 인지하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공동체 내부의 긴장과 충돌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삶이라는 여정에서 ‘그저 스쳐 가는 존재’와 ‘온전히 빛나는 존재’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가며. 관객은 작품과의 내밀한 감응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의 경험에 공명하며, 삶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스스로 정립하는 성찰의 여정을 떠나게 될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충격(Whiplash) 속에서도 우리 내면의 빛(We flash)이 발현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글: 전승용((재)한원미술관 선임 학예사)

© 2026 Hansol Noh. All rights reserved.